부정적 상황 2018. 3. 3. 23:55

부정을 통한 긍정의 위험성



김원호(dent4834@hanmail.net)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모든 정보를 공유하게되면서 나타나는 일 가운데 한 가지는 끊임없이 타인을 부정하는 상황이다.


특히 타인에 대하여 유난히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서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상황 가운데 한 가지로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질 것을 말씀하신다.


불법의 흥행과 더불어 끊임없는 정죄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끊임없는 정죄는 모두를 파멸로 몰아갈 뿐이다.


특히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왜곡된 현상 가운데 한 가지는 자신을 긍정하는 수단으로 타인의 부정적 상황들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부정적 상황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성도가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이러한 부정적 상황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달려있다.


세상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를 정죄하기만 성도는 정죄하는 일을 그만두고 하나님 앞에서 무릎꿇고 기도를 하여야한다.


하지만 자칭 성도라하는 거짓된 이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편의 부정적 상황을 끊임없이 들추어낸다.


더군다나 이들은 자신의 긍정적인 면도 곁들여서  드러내면서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한다.


이들은 타인의 부정적인 면을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나타내는 자신의 삶의 긍정적인 면은 도덕적인 관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부정을 통한 자신에 대한 긍정이 얼마나 심각한 악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들은 모르고있다.


특히 신학의 영역에 있어서 도덕적 기준으로 끊임없이 타인의 부도덕을 질타하는 이들은 구약의 영역에 그쳐있거나 아니면 인본주의 신학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다.


신약에서는 은혜의 복음을 통하여 부정적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하는 부정적인 면들은 인간이 근본적인 죄인임을 드러냄으로서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부정을 통한 정죄와 이를 통한 자신의 합리화는 그리스도께 귀결되어야할 복음을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잘못 사용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타인의 부정을 통한 자신의 긍정에 익숙한 이들은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바리세인들은 자신은 다르다고하면서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려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타인의 부정적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 안된다.


신학이 제대로된 사람들은 타인의 부정적 상황을 들춰 내려고도 해서는 안되고 그러한 일이 공개되었을 때는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가끔 어떤 이들은 타인의 부정적 상황이 그들의 잘못된 신학때문이라고 정죄를 하면서 자신의 신학이 올바르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은혜의 복음을 모르는 인본주의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있음을 모를 뿐이다.


이들은 타인의 지지를 통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려고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증명을 받으려고하지 않는다.


참된 성도는 타인의 부정을 통해서 자신의 부정을 돌아보아야한다.


특히 부정적 상황에 예민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성경을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부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부정적 상황이 잘못된 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신학이 옳다고 말하지만 정작 잘못된 신학을 가진 사람은 비판에 능숙한 사람들이다.


부정적 상황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진실된 성도는 다른 이들을 부정하기에 앞서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서 용서를 구해야한다.



(결론)


인간은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도 자신을 긍정해서는 안된다.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탄식을 했다.


칼빈 교리의 핵심은 인간의 전적인 부패로부터 출발된다.


오직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타인의 부정적 상황에 대하여 채찍을 들을 수가 없다.


타인을 부정하는 것은 사랑이 없는 정죄이며 이들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자들이다.


자식의 부정적인 모습을 본 부모가 쉽게 자식을 정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쉽게 정죄를 하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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