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부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2.03 ::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에 대한 단상
  2. 2018.01.03 :: 그리스도의 부활과 안식
단상/부활 2018. 2. 3. 00:48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에 대한 단상



김원호(dent4834@hanmail.net)



성경에는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비슷한 표현들이 여러 군데 나온다.


종종 비슷한 가사가 들어간 찬양을 부르면서도 그 내용과 의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문맥과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교리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명해주는 다음의 글은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다는 것을 말해주고있다.


니케아 교회회의(325년)와 콘스탄티노플 교회회의(381년)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모든 세상이 있기 전에 하나님에게서 나셨으며,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이시다. 또 그리스도는 창조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셨고, 모든 것을 지으신 아버지와 동일 본질을 갖고 계신다”고 진술했다.(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조엘 비키 마크 존스, 399에서 인용)


이는 창세 전의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보여주는 “낳았다”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것이다.


“낳았다”라는 개념을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계시켜주는 성경의 표현들은 다음과 같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편 2:7)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행 13:33)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1: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히 5:5)


낳았다는 말씀의 의미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규명해주는 말씀이다.


낳기 위해서는 산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산고의 과정은 오랜 고통의 시간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완성되기까지의 수고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가나안에서의 고통의 세월과 그리스도의 고난의 시간이라는 오랜 산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활은 죽음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산고의 고통은 하나님의 죽으심으로 마감이 된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죽으시기까지 고통을 감당하신 것은 인간의 죄의 심각성를 말해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신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낳으심


오늘 너를 낳았다는 것은 완료형을 뜻한다.


부활은 약속의 성취로서 이미 다윗의 시편을 통하여 약속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산고의 열매로서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들이 되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도 아들이 됨으로서 하나님께서 낳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낳으심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자들의 썩어짐과 죽음에 대한 영원한 결별로서 이들에 대한 영원한 축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아들이신 그리스도


로마서에서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라고 기록함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되심의 근거를 부활에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아들로 삼으심으로서 첫 째 아담의 잃어 버린 자리를 채우셨다.


누가는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눅 3:38)”고 기록하고있다.


그리스도의 족보는 아담을 거쳐서 하나님까지 올라간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으며, 아들로서의 자격을 부여하셨다.


아담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아들로서의 자격이 박탈되었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한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것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삼위 하나님께서, 아담 안에서 상실되었던 자신의 형상을 회복시키신 것이며, 삼위 하나님의 새창조 사역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자녀 삼으심으로, 아담 안에서 상실되었던 자녀를 되찾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것은, 아들 안에 연합된 모든 성도들을 자녀 삼으셨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유대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유대 이스라엘의 죽음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이스라엘의 탄생이다.


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었으며, 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자들이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새이스라엘이 되시며, 예수의 부활하심은 하나님께서 낳으신 새 이스라엘의 탄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이스라엘이 되셔서 자신의 몸된 지체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모으신다.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메시아되심은 부활을 떼어놓고서 생각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새 이스라엘의 탄생도 없었으며,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소속될 나라가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낳으신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로운 백성들의 탄생의 의미하며, 새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짐을 의미

한다.



맏형으로서의 그리스도


예수를 일으켜 아들 삼으신 것은 구약의 약속을 근거로 한 것이며, 그리스도는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심으로서 모든 믿는 자의 맏형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맏형으로서 성도를 대표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낳으신 아들은, 성도들을 부활을 통하여 자녀 삼으실 것에 대한 보증이시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히브리서 기자는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히5:5)” 기록함으로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씀하신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로서 대제사장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하나님 나라 백성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새 이스라엘의 백성의 백성으로서 유대 이스라엘의 백성과 구별된다.


유대 이스라엘 백성은 본질적으로 죄인인 아담의 후손으로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인 유대 이스라엘을 백성으로 삼으시지 않으시고, 부활을 통하여 낳으신 새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성도는 대제사장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다ㅣ


사도행전에서와 같이,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의 탄생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들로 낳으신 분이시다.



새이스라엘로서의 그리스도는 성도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초대하셨으며, 혈통으로난 유대적 이스라엘이 아닌, 믿음을 근거로한 새로운 이스라엘로서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이다.


결론


이상에서 간추려 살펴본 바와같이 하나님께서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가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새창조 사역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 아담을 창조하시면서 아들을 삼으셨지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자녀의 상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라는 산고의 고톤 가운데 낳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창조의 문을 여신 것이다.


성도가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낳으신 아들의 자격에 참여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되기까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산의 고통을 담당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릴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단상 > 부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의 부활과 안식  (0) 2018.01.03
posted by Wonho Kim
:
단상/부활 2018. 1. 3. 12:38

그리스도의 부활과 안식



Paul Kim (penthos7@naver.com)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처음 아담과의 관계 안에서 해석되어질 때 좀 더 명확해진다.


그리스도의 부활도 처음 아담과의 관계에서 해석되어질 때 좀 더 명확해진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처음 아담에게 주어진 에덴에서의 과제의 성취의 결과물이다.


처음  아담에게 주어졌던 에덴에서의 요구는 한시적이었다.


이는 가나안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율법의 요구가  한시적으로 재연된 것과 유사하다.


만약에 아담이 통치 명령 (창 1:28)과 선악과 금령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다 이행하였다면 아담에게는 종말론적 축복과 영생이라는 안식이 주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이 실패하였다고 에덴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이 취소된 것은 아니다.


에덴에서의 목적인 영원한 안식은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취하셨던 안식이 이 땅에서 표현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 땅에서의 안식은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나타낸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표현한다.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형상에 의한 안식이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한다.


아담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처음 아담에게 요구되었던 안식은 오실 그리스도에 의한 안식을 예표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의 본체로서, 성취하신 안식을 통하여 이 땅에 대한 주권을 표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사역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처음 아담에 의하여 예표되었던 안식을 성취하시는 사역이었다.


처음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서 죽음에 이르렀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서의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에덴에서 성취되어야했던 종말론적 안식의 성취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에덴에서 약속되었던 종말론적 축복과 영원한 생명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원래 에덴에서 목표하였던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땅에 대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후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은 이 땅에서 희년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날이다.


상실된 자들, 포로가 된 자들에 대한 해방을 선포하는 날이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모든 인류는 상실된 자이며, 사단에 포로가 된 자들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안식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은 신자에게만 적용이 된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 땅에서 성취된 안식을 근거로 이 땅에 희년을 선포하는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인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되었으며, 밀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리는 칠칠절은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이 땅에 영원한 안식이 선포된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언약, 즉 처음 아담에게 요구되었던 행위 언약이 이 땅에서 종결되었음을 뜻한다.


이 땅에서의 성령의 사역은 이 땅에 안식을 선포하는 창조 사역이다.


종말론적 축복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안식으로서의 구원은 더 이상 인간의 행위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새관점에서의 행위의 요구는 이 땅에 임한 영원한 안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성령에 의하여 선포되는 하나님 나라는 참 이스라엘로서 역사적 이스라엘과는 구분된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에서는 역사적 이스라엘을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로 보고있지만, 역사적 이스라엘은 참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모형일 뿐이다.


참 이스라엘은 그리스의 부활하심과 오순절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사도들에 의하여 새롭게 시작되어진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이다.


율법에서의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안식을 예표하는 것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라는 모형과 그림자를 통하여 실체인 그리스도의 안식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처음 아담의 실패를 완성시키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에덴에서 아담에게 요구되었던 것을 완전히 성취하셨기 때문에, 부활을 통하여 안식의 주인이 되실 수가 있으셨다.


부활은 율법의 요구에 대한 완전한 성취와 십자가에서의 속죄 사역으로 인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느것에 대한 하나님의 만족이 표현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안식의 성취로서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질 영원한 안식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처음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인류가 죽음에 이르렀지만, 마지막 아담으로서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택하신 이들이 생명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신자는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에덴의 목적을 성취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에덴에서의 요구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시고 부활로서 안식을 성취하셨다.


신자는 에덴에서 요구되었던 통치 명령(문화 명령)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신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지상 명령(대위임령)을 수행함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여야한다.


하나님 나라는 신칼빈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문화변혁을 통해서 확장되는 것도 아니며, 이 땅에 성령이 강림하시기 이전의 역사적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다


신자에게 주일은 일주일의 시작이기에 일상이 하나님의 안식 안에서 이루어져야함을 인식하여야한다.


신자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동참하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을 준비해야만 한다.

'단상 > 부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에 대한 단상  (0) 2018.02.03
posted by Wonho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