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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0. 1. 3. 22:01

하와를 유혹한 뱀의 공동체성과 대표성

 

김원호(dent4834@hanmail.net)

 

뱀은 하와를 유혹하였던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지만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는다(창 3:14)

 

이번 글에서의 논점은 뱀이 더욱 저주를 받았다는 말에 대한 해석이다.

 

하나는 다른 가축과 들의 짐승들은 저주를 받지 않았지만 뱀만 심하게 저주를 받았다는 해석이고, 또 하나는 다른 가축과 들의 짐승들도 저주를 받았지만 뱀은 다른 가축과 들의 짐승보다도 더욱 심하게 저주를 받았다는 해석이다.

 

필자는 후자에 동의하면서 이에 대해 논하고자한다.

 

그럼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은 뱀으로 인하여 왜 함께 저주를 받았어야만 했는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이 뱀으로 인해서 함께 저주를 받았다면 뱀은 대표성을 가지고 더욱 저주를 받은 것이 된다.

 

뱀이 대표성을 가지고 하와를 유혹하였다면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도 마찬가지로 하와를 유혹하는 일에 동참하였음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필자는 몇가지 예를 들면서 뱀이 가지고있는 대표성에 대하여 간단하게나마 논하고자 한다.



다스림을 받아야 할 존재로서 뱀

 

우선은 여자를 실족케한 뱀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살펴보고자한다.

 

뱀은 아담이 다스려야할 존재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모든 생물에 대한 통치를 명령하셨다.

 

창세기 3장 1절에서 묘사하고있는 짐승(חַי  chay)은 창세기 1장 28절의 통치명령을 근거로 아담에게 다스림을 받아야 할 생물(חַי  chay)과 동일하다.

 

아담이 생물을 다스리는 것은 모든 생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선포하는 것이며, 모든 생물은 아담의 통치를 받음으로서 하나님의 통치에 순응하는 것이다.

 

에덴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아담에게 부여되었던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서의 직책이 행사되었던 곳이었다.

 

에덴에서의 모든 생물은 아담의 3중직으로 인해서 성전으로서의 에덴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에덴에서의 모든 생물은 아담의 통치를 받음으로서 성전이 보존될 수 있었다.

 

아담에게 부여되었던 통치권에는 적대 세력에 대한 방어적 성격을 가지고있었다.

 

아담이 생물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생물은 다른 존재, 즉 사단에게 이용당하면서 에덴을 훼손할 수 있다.

 

사단은 하나님의 성전인 에덴을 무너뜨리고자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물들을 도구로 사용하였다.

 

사단은 자신의 계략을 극대화하고자 에덴에서 가장 지혜로운 짐승을 선택하였으며, 뱀이 여기에 선택되어진 것이다.

 

간교로 변한 지혜

 

뱀이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짐승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정도 간교하다는 것을 내포하고있다.

 

들짐승도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으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짐승을 지으셨지 간교한 짐승을 지으시지는 않으셨다.

 

창세기 3장 1절에서는 뱀이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고 말하고있다.

 

들짐승이 간교하다는 것은 들짐승들이 사단에게 어느 정도는 이용당하고있었기에 간교해진 것이지 하나님께서 들짐승을 간교하게 지으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짐승에게도 지혜를 주셨다.

 

그 가운데 뱀을 가장 지혜롭게 지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뱀같이 지혜롭게 행할 것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롭게 지으신 들짐승도 사단에게 이용당할 때에는 간교한 들짐승이 되는 것이다.

 

뱀은 아담에게 지배를 받기보다는 사단의 도구로 쓰임받았기에 간교한 들짐승이 된 것이다.

 

들짐승들이 간교하게된데에는 아담에게도 책임이 있다.

 

아담이 들짐승들을 완전하게 통치를 하였더라면 들짐승들이 사단의 도구로 이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자가 뱀을 만나 친근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하여 알게하는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존재와의 만남에는 항상 경계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에 대하여 전혀 문제의식이 없었다.



뱀의 대표성과 공동체성

 

사단이 뱀을 이용하여 성전으로서의 에덴을 공략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공략하였던 블레셋 족속의 모습에서도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골리앗은 블레셋을 대표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힌다.

 

골리앗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것은 개인적인 동기에서 개인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블레셋을 대표해서 공적으로 행한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적하였던 것도 마찬가지로 공적으로 이스라엘을 대표한 것이었다. 

 

다윗이 골리앗의 이마에 돌이 박히게 함으로서 골리앗을 죽인 것은 개인적인 승리를 넘어서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행동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하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성전으로서의 에덴과 성전이 있는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그리고 스스로 성전이 되신 그리스도는 에덴의 회복을 넘어 에덴의 완성으로 이어진다.

 

에덴에서의 처음 아담의 패배는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승리로 마무리 된다.

 

처음 아담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며 둘째 아담은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신다.

 

에덴을 공략했던 뱀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머리가 상하게 된다.

 

아담과 뱀, 그리고 다윗과 골리앗은 모두 공동체적 대표성을 가지고있다.

 

아간의 범죄는 개인적인 범죄였지만, 아간은 개인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일원이라는 공동체성을 가지고있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기세가 등등했던 이스라엘은 아이를 치려고 올라갔다가 아모리 사람들에게 패배를 하게된다.

 

패배의 원인은 아간의 범죄였다.

 

하나님 안에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공동체성을 가지고있다.

 

또한 역사의 사건들은 유형적으로 유사성을 가지고 반복된다.

 

골리앗의 대표성과 다윗의 대표성은 들짐승을 대표하는 뱀과 구원받을 자들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와 역사 안에서 유사성을 가지고있다.

 

골리앗이 블레셋에서 대표성을 가지고 이스라엘에게 도전하였듯이, 뱀은 들짐승들 가운데 대표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에게 도전한 것이었다.

 

골리앗은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 가장 건장하여 대표로 나섰던 것과 같이 뱀은 간교한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하여 여자를 유혹하는 대표로 차출된 것이다.

 

국가 대표 선수들은 말 그대로 국가를 대표하며, 이들은 그 분야에서 가장 특출났기에 선택받은 것이다.

 

축구 한일전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은 그들의 승리가 곧 백성들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뱀은 들짐승 가운데 선택되어 대표성을 가지고 사단에게 이용을 당한 것이다.



공동체적으로 임한 저주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일에 성공함으로서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들은 더 이상 아담의 다스림을 받지 않게 되었다.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피조물은 제각기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적합한 역할을 해야하지만 이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아담을 범죄케한 여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피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여야할 아담도 더 이상 실행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의 저주에서 피할 수가 없었다.

 

모든 생물들도 마참가지로 창조 목적에 따라 아담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하지만, 더 이상 아담의 다스림을 받지 않게된 생물들은 하나님의 저주에서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뱀이 아담을 타락시킴으로서 더 이상 아담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 것은 아담을 타락 시킨 뱀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아담의 타락은 모든 생물에 대한 지배권의 상실로서,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온전하게 사용되어질 수가 없었다.

 

여자를 유혹하였던 뱀의 행동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영향을 미쳤기에 뱀의 행동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을 대표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뱀의 행동으로 인하여 모든 간교한 들짐승뿐만이 아니라 모든 가축에게도 마찬가지 저주가 내릴 수밖에 없었으며, 여자를 유혹한 뱀은 더욱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아담의 범죄는 아담을 위해서 지어진 모든 창조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나님의 6일간의 창조는 아담에게 향하여있었다.

 

아담이 범죄한 이상 모든 창조 세계는 창조 목적에 적합한 온전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범죄한 인간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창조 세계를 악용하고 파괴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핵무기를 만들라고 광물 자원을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저주에는 사람을 향한 구원의 축복이 담겨있다.

 

창조 세계는 인간의 악을 억제하기 위해서 저주를 받음으로서많은 순기능을 상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들의 악한 행동을 위해서 창조 세계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땅이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된 것은 자연의 순기능이 인간의 악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아담을 위해서 지어진 창조 세계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저주에서 예외가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담의 통치에서 벗어난 피조 세계는 사단에게 악용될 수 있기에 하나님의 저주는 사단의 악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담이 에덴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되는 날까지 모든 생물이 아담의 통치를 받으며 아담의 통치 아래에 있었더라면 모든 생물은 아담과 마찬가지로 안식의 축복을 누렸을 것이다.

 

피조 세계는 아담의 순종으로 안식에 이르는 복된 길에 있었어야했는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아담에게 안식을 제공해주는 축복의 수단이 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뱀의 행동은 모든 생물들을 넘어서 모든 피조계에 영향을 끼쳤기에 하나님의 저주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을 제외한 뱀에게만 저주를 내리셨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저주는 사단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들의 반역성을 억제함으로서 타락한 아담을 보호하려는 은혜가 내포되어있다.

 

특히 뱀은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흙을 먹음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과 더욱 멀어지게됨으로서 사람을 유혹하는 간교함이 억제될 수 있었던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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